지금 우리가 손에 쥔 한글 성경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. 신구약 전체를 우리말로 옮긴 첫 성경은 1911년에야 나왔습니다. 「셩경젼셔」라 불린 이 책이 한국 최초의 우리말 완역 성경입니다.
이야기의 뿌리는 개항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. 선교사가 조선 땅을 밟기도 전에, 만주에서 존 로스와 서상륜이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. 성경이 사람보다 먼저 이 땅에 들어온 셈입니다. 이후 국내에서 번역이 이어져 1900년에는 신약젼셔가 완역됐습니다.
남은 것은 방대한 구약이었습니다. 번역위원회의 중심에는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 레이놀즈(한국명 이눌서)와 한국인 조사 김정삼, 이승두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. 이들은 레이놀즈가 머물던 전주에서 원문과 씨름했습니다. 십여 년의 작업 끝에 구약 번역은 1910년 4월 2일에 완료됐습니다. 그 사이 시편(1906년), 창세기와 잠언과 출애굽기와 사무엘서와 말라기(1907년), 열왕기와 이사야서(1908년)가 먼저 낱권으로 나와 있었습니다.
마침내 1911년, 이미 나와 있던 신약과 완역된 구약을 한 권으로 묶은 「셩경젼셔」가 발간됐습니다. 1908년 연합지부가 해체된 뒤 영국성서공회가 이 일을 주도했습니다. 훗날 1938년 「개역」과 구별하여, 이 1911년 판을 「구역」 또는 「옛 번역」이라 부릅니다.
이 완역이 남긴 것은 성경 한 권에 그치지 않았습니다. 번역자들은 한자를 모르는 백성과 여성과 아이도 읽을 수 있도록 쉬운 한글로 옮겼습니다. 그러자 성경을 읽기 위해 한글을 배우는 사람이 늘었고, 문맹이 줄었습니다. 성경 번역이 곧 한글 문화가 퍼지는 통로가 된 것입니다. 하나님의 말씀이 라틴어라는 벽 뒤에 갇혀 있던 것을 각 나라 말로 풀어낸 종교개혁의 흐름이, 이 땅에서는 한글과 함께 흘렀습니다.
말씀이 '남의 언어'가 아니라 '내 언어'로 왔다는 것, 이것이 한국 교회가 물려받은 유산의 출발점입니다. 오늘 우리가 아무 벽 없이 성경을 펴 읽는 그 평범한 일 뒤에는, 전주의 좁은 방에서 십여 년을 씨름한 손길이 있습니다.
"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"(시편 119:105). 그 빛을 우리 말로 밝혀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, 우리는 오늘도 그 등불 아래를 걷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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